카테고리 없음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난 영웅들(1) : 오늘 우리나라를 구할 그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신한국인 2021. 9. 1. 10:19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난 영웅들(1) : 오늘 우리나라를 구할 그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한국인 / 2021. 09. 01)

 

정말 어지러운 상황입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오늘 대한민국은 나라를 구할

그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 인물은

과연 나올 수 있을까요?

 

<오리 이원익>

 

<이원익 사당>

 

====================

 

★죽음 일보 직전의 이순신을 구한 "오리정승 이원익"★

(강태공 / 2021. 4. 23 / 네이버 블로그)

 

때는 1592년 1월 1일,

무려 6등급을 뛰어넘어 "전라좌수영 절도사"로 임명된 이순신.

 

요새 말로 대위계급에서 별 두개 소장으로 초초파격 진급을 한 이순신이

당시 "경상 좌수사 박홍"과 "경상 우수영 원균" 그리고 “전라 우수사 이억기" 진영에

"전라 좌수영 절도사"로 내려 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 조직에서 초초파격적인 계급장을 달고 내려온 이순신을 보고

이들이 그냥 있었을 리가 있었겠습니까?

시쳇말로 짬밥으로 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밥그릇을 쫙 깔아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그러니 이 세 장군들의 시기질투는 당연하다고 보여집니다.

특히 계급사회에서는 "모든 것은 계급으로 말한다"는 말처럼,

아직 이순신의 실력이 드러나기 전이었기에 이들의 불만은 너무 당연했다고 봐야 합니다.

 

세월이 흘러 임진왜란이 소강상태인 1597년(정유년) 2월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은 "한산통제영"에서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고 "국형장"이 열렸습니다.

 

선조임금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문무백관 200명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이순신은 역적이오니 죽여야 하옵니다"

"죽여야 하옵니다"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문무백관들 모두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고 선조임금을 압박하였고,

심지어 이순신을 발탁해주고 6계급 파격으로 진급을 시키는데 크게 힘을 써준

유성룡까지도 "공은 공, 사는 사"라고 하면서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는 문무백관들의 의견에 반대를 못했으니...

 

당시 이순신의 역적누명 상황이 어떠했겠습니까?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정작 이틀이 걸려도 이순신의 형은 집행되지 못했습니다.

무슨 이유였을까요?

 

당시에는 영의정 겸 도체찰사(국가비상사태 직무총사령관)인 "오리 이원익"이

선조임금의 어명에 따라 임진왜란의 전시상태에서 모든 권한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시상태에서 아무리 임금과 문무백관들이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라고 외쳐도

"도체찰사"인 이원익의 승락 없이는 선조임금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원익은 거듭되는 선조임금의 형 집행 재촉에 청사에 길이 남은 명 대사를 말합니다.

"전하께서 전쟁 중에 신(臣)을 폐하지 못하시는 것처럼,

신 또한 전쟁 중에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을 해임하지 못하옵니다"

 

이원익의 이 말 한마디에 선조임금도 체념을 하고

장장 이틀이 걸린 이순신 "국형장"에서 문무백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체찰사가 그리 말을 하니 이순신이 죄가 없는가 보구나"라고 개탄했다고 합니다.

 

선조임금이 "도체찰사 이원익"에게 건넨 이 말 한마디로 이순신은 사형을 면하게 됩니다.

당시에 문무백관 199명 대 1명 즉 이원익 딱 한 사람만이 반대를 하여

이순신을 살려 낸 것입니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선조 임금과 문무백관들 모두가

왜 이원익 한 사람을 이기지 못했는가 입니다

 

당시에 유성룡를 비롯한 중앙관료 중 현지 경상, 전라 수군 지역으로

시찰을 내려가 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원익은 두 번씩이나 현지 수군 지역에 내려가서

현지 상황과 각 수군부대 및 장군들의 근무 실정과 전투 준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여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전쟁을 총 지휘하였으니

모두 "도체찰사 이원익"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사형을 모면한 이순신은 도원수 권율(權慄) 밑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도체찰사 이원익"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 후 같은 해인 1597년 7월 16일에 이순신의 백의종군이 있었음에도

원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칠천량해전"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판옥선 대부분이 불타거나 왜군에게 노획당하면서 대패하였고,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은 청사에 남는 그 유명한 결사항전의 비장한 각오를 말합니다.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내가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의 수군을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다"

 

이어 이순신은 1597년 9월 16일에 벌어진 "명량해전" 승리로 조선 수군은

나라를 위기에 빠뜨렸던 정유재란의 전세를 역전시켰습니다.

 

그 여세를 몰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도망가는 왜적을 단 한 척도 살려 보낼 수 없다는 결기로 분전하던 이순신은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전사했습니다.

 

이순신은 62전 62승이라는 전 세계 해전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온갖 시기질투와 모함으로 사형직전까지 간 만고(萬古)의 충신 이순신을 알아보고

문무백관 199 대 1의 불신과 선조임금의 불신으로부터 이순신을 믿고 살려준

"오리 이원익"의 탁월한 선견지명으로

이순신은 7년에 걸친 왜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도탄에 빠진 나라의 영토와 백성들의 생명과 조선 사직을 지켜낸 "오리 이원익"이야 말로

만고(萬古)에 빛나는 충신이요 나라의 보배 중에 보배라고 감히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리석고 무책임한 문무백관 199명이 나라를 구한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오리정승 이원익"이 나라를 구한 것입니다.

 

한 사람,

올바른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오늘 대한민국은 그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를 구할 그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언제 나오나요? @@@

 

https://www.youtube.com/watch?v=d7bldc-szk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