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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난 영웅들(2) : 오늘 우리나라를 구할 그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신한국인 2021. 9. 10. 07:55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난 영웅들(2) : 오늘 우리나라를 구할 그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한국인 / 2021. 09. 10)

 

오늘 대한민국은 나라를 구할

그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 인물은

과연 나올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된 경위를 간단히 살펴 봅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살린 사람은 백선엽 장군입니다.

남로당 간첩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박정희 소령을 살려 준 것입니다.

 

물론 박정희 소령을 그냥 살려 준 것은 아닙니다.

면밀한 조사의 결과이자

또 백선엽 장군의 혜안이 작용한 것입니다.

 

조사 결과 박정희 소령이 남로당에서

중요한 군사책을 맡은 것은 사실로 밝혀졌지만...

 

군 내부에서 남로당 조직 및

포섭 활동을 한 흔적이 없었고...

 

또 조사를 받는 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군 내부의 남로당 조직을 수사팀에게 폭로한 것입니다.

 

이런 몇 가지 사실들이

구명의 명분이 된 것입니다. 

 

박정희 소령과 백선엽 장군의

만남 장면을 간단히 정리해 올려 봅니다.

 

<맨 왼쪽이 백선엽, 왼쪽에서 세번째가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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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살형 열흘 앞둔 박정희 "살려달라" 한마디 … 백선엽 "그렇게 해 봅시다"

(백선엽 회고록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에서 발췌)

 

백선엽 장군은 국방부 정보국장직에 있으면서 1948년부터 군내 남로당 숙군을 주관하게 된다. 그때 남로당 군사책으로 포섭되었던 박정희 소령을 사형집행 10일을 앞두고 구명함으로써 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 중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백선엽은 당시 정보국 고문관인 이드 미 육군 대위에게 부탁하여 하우스만 미 육군 대위와 로버츠 미 육군 준장에게 박정희의 구명을 요청했고 육군본부 내 재심사를 요청하여 박정희에 대한 형 집행정지를 얻어냄으로써 그를 불명예 제대시키는 선에서 문제를 매듭지었다.

 

그후 국군 내부의 반대와 일부 장교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박정희가 문관 신분으로 정보국에서 근무하도록 배려했다. 그후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박정희는 군 현역으로 복귀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정보국 제1과장으로 전쟁에 참여하였다.

 

◇ 박정희 소령 면담 장면(회고록 본문에서 발췌)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전등불은 아직 켜지 않은 상태였다. 사무실 안으로는 아직 겨울 석양의 자락이 조금 남아 있었다. 하지만 밀려오는 어둠에 서서히 자리를 내주면서 사무실 전체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김안일 방첩과장은 말을 이어갔다. “박정희 소령이 마지막으로 국장님을 한 번 뵙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꼭 만나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정희 소령이 남로당 군사책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에 따른 모든 증거가 나와 사형이 확정되었지만 할 말이 있었던 모양이다.

 

대한민국 군대에 파고든 남로당 조직들을 검거하는데 공을 세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다면 당신 말대로 한 번 박 소령을 만나봅시다.” 내가 그렇게 대답했다. 김안일 소령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걸어 나갔다.

 

조금 있으려니 내 사무실 문이 열렸다. 김안일 소령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사람이 박정희 소령이었다 ... 김안일 과장은 아무 말 없이 내게 손짓으로 박정희 소령을 가리켰다. 김 과장은 내 왼쪽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박 소령은 내 정면에 서 있었다 ...

 

나는 그를 바라보면서 “우선, 그 의자에 앉으시라”고 권했다. 머뭇거리던 박정희 소령이 의자에 앉았다 ... 10여 초 흘렀던 것 같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승과 저승으로 엇갈릴지 모를 운명에 놓인 박 소령과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바라보는 시간으로는 꽤 길었다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박 소령이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은 간단했다. 아무런 수식이 없었다. “한 번 살려 주십시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 말이 박 소령의 입을 통해 나오는 순간 그의 눈에는 눈물이 도는 듯 했다. 눈자위가 붉어지는 것도 내 눈에 들어왔다. 꼭 할 말만을 강하게 내뱉었지만, 그는 격한 감정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의연(毅然)하기도 했지만 처연(悽然)하기도 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임에는 분명했지만,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반드시 해야 할 말 한 마디만 얼른 내뱉는 점에서 그는 꿋꿋했다. 비굴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나는 그 모습을 줄곧 지켜보면서 잠시 동안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를 살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주 엄혹한 시절이었다. 좌익은 발호했고, 급기야 제주폭동에 이어 여수와 순천에서 대규모 반란이 벌어졌던 때였다. 군대 내부의 좌익을 척결하는 것은 신생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려있는 중차대한 작업이었다.

 

그 숙군을 지위하고 있는 내가 사형이 확정된 사람을 살려주는 일에 아무런 생각없이 앞장설 수 있는 처지가 결코 아니었다. 경무대의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내각과 미 군사고문단, 나아가 일반시민 모두 이 작업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그럽시다. 그렇게 해 보도록 하지요.”

 

◇ 박정희 소령 면담 이후(회고록 요약)

 

백선엽 장군의 조사 결과 박정희 소령이 남로당에서

중요한 군사책을 맡은 것은 사실로 밝혀졌지만...

 

군 내부에서 남로당 조직 및

포섭 활동을 한 흔적이 없었고...

 

또 조사를 받는 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군 내부의 남로당 조직을 수사팀에게 폭로했다.

 

그 결과 박정희 소령에 대한 형 집행정지를 얻어냈고

그를 불명예 제대시키는 선에서 문제가 매듭지어졌다. @@@

 

<붕괴 직전의 이 나라... 누가 살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