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이 더 : 저주의 굿판에 대한 응징은?
(한국인 / 2022. 02. 15)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저주의 굿판에 대한 응징은 ?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인데...
과연 세상은 어찌 변해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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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먹은 권력자의 말기적 반응
(선우정 논설위원 / 2022. 02. 16 / 조선일보)
문 대통령의 5년은 숙청과 역병의 시대였다
수많은 원한을 만들고 나의 안락만 구하겠는가
화내며 도망치지 말라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후보의 권력 수사 발언에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몰았다”며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다. 사자와 같은 존재는 이럴 때 “얼마든지 해보라”고 한다. 나약할수록 큰소리로 화낸다. 그는 겁을 먹은 것이다.
훗날 역사가 규정할 문 대통령의 시대는 명확하다. 숙청과 역병의 시대다. 조선 최대 숙청 사건인 갑자사화 때 239명이 유배형 이상의 화를 당했다.(김범 ‘연산군, 그 인간과 시대의 내면’) 문 대통령 적폐 수사로 구속 또는 기소 이상의 화를 당한 사람이 그 정도라고 한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적폐 몰이로 직장에서 내쫓겨 삶의 기반을 잃었다. 인격 살인을 당했다. 형벌의 경중은 크게 다르지만 사회에 미친 충격은 비슷할 것이다.
갑자사화를 일으킨 폭군은 자신의 주변에 고인 원한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공허에 미쳐 돌아가다가 폭정의 임계점을 넘어버렸다. 형벌이 과하면 폭군도 불안을 느낀다. 이 시대의 대통령은 오죽할까. 경직된 얼굴 뒤에 숨은 내면의 불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나락으로 내몰고 어떻게 자신의 안락만을 추구할 수 있겠는가.
구시대 청산이 필요한 시대가 있다. 문 대통령의 5년이 그런 시대였다고 본다. 보복과 처벌을 절제하고 용서를 앞세웠다면 역사의 전환점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직전 대통령 2명이 처벌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사법부 창립 기념식에 참석해 “지난 정권의 사법 농단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했다. 이것을 “촛불 정신”이라고 했다. 이 말에 전직 대법원장을 비롯한 고위 법관 14명이 기소됐고 현직 판사 66명이 비위 행위자로 찍혀 대법원에 통보됐다.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지나온 삶과 명예를 잃었다.
문 대통령은 이들의 처지를 돌아본 일이 없다. 10년 전 사건까지 끄집어내 “검경이 명운을 걸고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라”고 했다. 공소시효를 무시하라고 했다. 문 정부는 불법 수사도 저질렀다. 폭군의 집착과 무엇이 다른가. 그의 정치에선 지도자의 기본 덕목인 인(仁)을 발견할 수 없다. 측은과 자비가 없다. 수사를 위한 수사, 숙청을 위한 숙청만 존재했을 뿐이다.
“촛불 정신”을 말할 때 문 대통령은 기세등등했다. 그런 대통령이 2020년 5월 어느 날 입술이 부르튼 얼굴로 공식 석상에 나왔다. 그 즈음 청와대 주변에선 대통령이 밤마다 ‘혼술’을 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동서고금 모든 권력자의 심리를 관통한다. 왕좌에 오른 맥베스가 두려움에 헛것을 보기 시작한 때는 자신의 왕좌를 가져갈 운명인 뱅쿼의 아들을 죽이지 못했을 때였다.
암살에 실패한 삼류 자객을 붙들고 “이제 의심과 공포에 갇혀 살게 됐다”고 절규한다. 맥베스를 의심과 공포에 가둔 것은 자신이 원치 않는 미래 권력의 탄생이었다. 내가 키운 장수가 나의 측근과 비리를 향해 칼을 겨누기 시작했을 때, 그런데 그런 그를 많은 국민이 미래 권력으로 받들기 시작했을 때 문 대통령은 무엇을 느꼈을까. 맥베스처럼 삼류 자객 추미애를 붙들고 “내 발작이 도지게 됐다”고 책망했을까.
두려움을 느낀 맥베스는 바로 몰락한다. 아내 레이디 맥베스가 죄책감에 자결했을 때 파탄의 절정을 맞는다. 맥베스를 대표하는 대사가 이때 나온다. “꺼져라, 꺼져라, 덧없는 촛불이여! 인생은 한낱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 제 시간이 되면 무대 위에서 뽐내며 시끄럽게 떠들지만 어느덧 사라져 더 이상 들리지 않는구나. 그것은 바보가 지껄이는 이야기.”(한우리 번역, 더클래식) 맥베스는 전쟁터로 나가 최후를 맞는다. “불어라, 바람아! 오너라, 파멸아!” 셰익스피어는 “피는 피를 부른다”고 했다.
문 대통령 시대의 종막(終幕)은 길고 난삽하다.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하고 생존을 위해 매달렸다.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고 수사팀을 해체시켰다. 정권에 충성하는 측근을 요직에 앉혔다. 권력 수사 자체를 봉쇄했다. 청와대 울산 선거 개입 수사와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수사, 친인척이 관련된 이상직 스캔들 등 정권의 비리 의혹을 상식대로 수사했다면 지지율 40%의 모래성은 오래전에 무너졌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미래를 이월시켰다. 그러면서 자신만을 위한 면죄부를 약속받으려고 한다.
문 대통령의 서사는 극적이지만 미학이 없다. 비겁하기 때문이다. 권력에 집착했으면서 초연한 척하고, 피를 탐했으면서 착한 척한다. 안락을 갈구하면서 당당한 척하고, 실패했으면서 성공한 척한다. 문 대통령의 5년은 숙청의 시대다. 셰익스피어의 표현을 빌리면 “아라비아의 향수도 그의 손을 향기롭게 할 수 없다.” 화내며 도망치지 말라.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다. @@@
<김두한 가라사대, 앙천대소(仰天大笑)하는 저 입 속에 탑골공원 X뇨를...>
영부인의 품격과 품위는 국격이다 :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품격은?
(정재학 시인 겸 칼럼니스트 / 2022. 02. 11 / 트위터)
내 기억이 출발하는 어린시절의 대통령 영부인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파란 눈을 가진 프란체스카 여사였다. 그때 나는 대한민국 첫 영부인이 외국인이라는 사실에 얼마나 생소한 느낌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프란체스카 여사께서는 양장보다는 한복을 즐겨입으시고, 구멍난 양말이나 헤어진 옷을 손수 꿰매 입고 신으시던 검소한 분이셨다. 대한민국 첫 영부인이셨던 그분은 이화장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진정 한국사람이기를 소원하셨다고 한다. 아름다운 분이셨다.
그 다음의 기억은 육영수 여사였다. 학처럼 단아한 분이셨다. 끼니를 굶는 어느 가족을 위해 쌀을 보내주신 분이셨고, 그 가족이 하얀 아카시아꽃을 밥그릇에 담아 먹고 있더라는 말에 눈물 쏟던 분이셨다. 딸 박근혜를 비롯하여 삼남매의 도시락에 보리 넣은 밥을 싸주시던 검소한 분이셨다.
나머지 영부인들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는다. 감동이 없는 영부인들이었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얼른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픈 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차마 영부인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분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들은 품위까지 없는 분들은 아니었다. 품위라. 이건 기억이 아니라 지금 직관하고 있는 현실의 영부인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름은 김정숙. 얼굴은 넓데데 하고, 키는 작고, 몸은 통통한 마치 몽당연필을 연상케 하는 여자. 얼굴도 몸매도 여자로서는 별로인 수준의 여자다. 손명순 여사도 비슷한 스타일이었지만, 그러나 그 분은 후덕한 덕성으로 우리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주시던 분이셨다.
그러나 김정숙은 덕성이나 고고함, 생활의 검소와는 거리가 먼 여자였다. 해외순방길에 따라나선 김정숙의 의상은 수없이 바뀌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옷이 준비됐는지, 화면에 비친 김정숙의 의상은 너무도 다채롭고 화려했다. 백번을 살펴봐도 검소하게 살면서, 국민을 살피고 국민의 모범이 되는 영부인은 아니었다. 시집간 딸까지 청와대로 데려와 사는 여자였다. 사치와 허영, 남의 눈치 안 보고 자기 하고픈 대로 하고 사는 그런 종류의 여자였다. 국민의 세금으로 호의호식에 젖어, 죄송스러움 없이 사는 여자가 분명하였다.
강한옥, 90 넘은 늙은 시모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부산 어느 낡은 아파트에 버려둔 여자였다. 청와대는커녕 양산집에서도 모시지 않던 여자가 시집간 딸은 청와대로 데려와 살고 있었다. 남편 문재인은 종북바라기로 일관하면서, 경제부터 국방, 외교까지 망쳐놓은 역사의 죄인이 아니던가.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고 거짓말로 국민을 속인 사람의 아내가 김정숙 아니던가. 한미동맹을 무력화시키고 친중친북에 몰두하는 민족반역자를 남편으로 두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정녕 모르는 것일까.
몽당연필을 연상케 하는 몸매에 목까지 짧은 여자는 어떤 옷을 입어도 곱지 않는 법이다. 김정숙은 그런 여자였다. 옷이 어울리지 않는 여자. 그런 여자가 수없이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나라 망신이었다. 심지어 샤넬 소속의 디자이너가 만든, 세계에서 단 한 벌뿐인 옷을 입고 웃는 영부인 김정숙을 보면서, 그 처참함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마치 얼굴 못생긴 여자가 화장품을 덕지덕지 처바르는, 그런 안타까운 몸부림이 느껴지는 처참함이었다.
그뿐만이라면 눈을 감아줄 수도 있었다. 외국순방길에 남편보다 앞서 걸어가는 여자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고요히 발걸음 옮기며 남편의 뒤를 따르는 품위 있는 영부인이 아니었다. 대통령인 남편보다 앞서서 가며 나대는 그 경박함을, 그리고 한복을 입고 말춤을 추는 여자를,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외국순방길에 국익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관광길에 나서는 여자를 '우리 영부인'이라고 부를 사람은 없으리라. 심지어 대통령 없는 대통령 1호기를 타고 인도 관광길에 나선 여자가 아니던가.
그 남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감옥이라는 사실을 김정숙이 모를 리 없다. 야권 대선후보가 신(新)적폐청산을 말하자, 펄쩍 뛰고 있는 남편에게 곧 닥칠 운명을 김정숙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정권의 폐단을 모른 채 묻어두고 갈 대통령은 지구상엔 없다. 그것이 권력이다. 코로나 시대에 외국 관광은커녕 수없이 도산하는 자영업자들과 엄혹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을 아랑곳하지 않는 여자, 김정숙. 물가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국민은 생활고에 빠져 헤매고 있는데, 피라미드가 눈에 들어오던가 싶다.
문재인 취임 초기 동백나무를 들고 독일로 가던 그 여자, 김정숙을 기억한다. 김일성을 추종하던 좌빨 음악가 윤이상의 무덤에 동백나무를 심어준 그 무지함을 잊지 못한다. 동백림 사건의 '동백림'이 동베를린의 한자음 표기였던 것도 모르던 그 무식함도 잊을 수 없다. 품위도 덕성도 검소함도 없는 이질적인 여자, 김정숙에게 영부인이란 호칭은 지나친 배려일 것이다. 최근 법원은 청와대 특활비와 김정숙의 옷과 구두 등 일체의 의전비용을 공개하라고 했다. 도대체 그 여자 김정숙에게 들어간 돈이 얼마나 될지, 무엇을 얼마나 쓰고 샀는지, 곧 알게 될 것이다.
구멍난 양말을 꿰매신던 파란 눈의 프란체스카 여사, 삼남매에게 보리밥을 넣은 도시락을 싸주던 육영수 여사. 그분들은 한 푼을 아끼면서, 국민과 함께 가난의 아픔을 같이하던 영부인들이셨다. 평생을 검소하게 사셨고, 한복옷 한 벌로도 진정 아름다웠던 분들이셨다. @@@